2022 세종도서 학술부문 선정
저자 | 한영현 | 역자/편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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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22.04.15 | ||
ISBN | 9791159056864 | ||
쪽수 | 323 | ||
판형 | 152*223, 무선 | ||
가격 | 23,000원 |
한국영화 100년, 달라진 위상의 의미를 추적하다
한국영화는 현재 큰 명성을 누리며 전 세계 관람객들에게 열광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는 한국영화 100년의 역사가 축적한 저력의 성과일 뿐만 아니라 한국영화 콘텐츠의 무한한 잠재력을 새삼 일깨워 주는 획기적인 사건이라 할 만하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으로 증명된 이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한국영화 안에 스며들어 있는 대중의 삶과 의미를 재고함으로써 무엇이 한국영화만의 특색을 형성해 왔는가를 꼼꼼하게 들여다보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 글은 한국영화사 연구의 차원에서 이러한 시도의 일환으로 출발했다. 특히, 냉전 시대 영화에 재현된 타자들의 삶을 분석함으로써 그동안 충분히 규명되지 않았던 한국영화의 새로운 의미 및 그로부터 추론해 볼 수 있는 대중의 삶의 양상을 규명하고자 했다.
냉전 시대 타자들에 접근하는 것은 한국영화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방법이다. 당대 영화는 이른바 ‘못 배운 고무신짝’ 관객부터 대학생 엘리트 관객까지 두루 흡수하면서 대중매체로서의 대표성을 오랜 기간 유지했다. 통치 권력이 반공주의와 근대화 논리로 사회 질서를 재편성하며 대중을 주체와 타자로 구별 지을 때 사회가 요청한 울타리 안에 편입되지 못한 대다수 대중과 가장 밀접하게 접속한 매체 또한 영화였기 때문이다.
사회 밖 소외된 이들을 감싸 안은 한국영화
사실 한국영화의 가장 큰 저력은 냉전 시대를 관통해 오는 동안 영화계가 겪어야 했던 통제와 억압 속에서도 배제되거나 소외된 영역의 대중을 감싸 안으면서 그들을 재현의 장으로 꾸준하게 호출해 온 데 있다. 시대별로 타자화되는 존재들의 양상은 변화했을지라도 한국영화는 근본적으로 대중의 가장 보편적인 구성체인 가족과 구성원들 그리고 그들이 살아가는 공간을 탐색하며 배제된 약자와 가난한 자들의 삶을 영화적 세계로 구축해 내곤 했다. 물론, 때로 정권의 나팔수를 자처하는 계몽 영화를 찾아볼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한국영화사를 화려하게 수놓은 작품 세계 속에는 타자화된 대중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녹아들어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글은 냉전 시대 반공주의와 근대화 논리가 타자성과 맺는 관계 및 한국영화 속 타자들의 모습을 다각도에서 살펴보았다. 구체적으로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한국영화사 흐름을 따라가면서 각 시대를 구분한 뒤 영화 작품 분석을 중심으로 타자성의 의미를 추출해 내고자 했다. 특히 ‘가족’과 ‘공간’은 타자성의 의미를 추출하는 데 있어 주요하게 관심을 가진 분석 대상이었다. 반공의 논리와 경제 성장에 기반한 근대화 논리가 냉전 시대를 관통하는 통치 전략으로 위세를 떨치는 가운데 영화 속 가족과 구성원들의 일상적 공간은 시대가 요청한 바를 완벽하게 구현하는 듯하면서도 이면의 부작용들과 은폐된 부분을 재현하곤 했다. 요컨대 한국영화는 시각적 이미지의 복잡다기한 모호함을 적절하게 활용함으로써 통치 권력의 칼날을 피하면서도 대중의 삶과 접속하는 길을 만들어 갔다.
이 글에서는 비록 냉전 시대로 일컬어지는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한국영화 속 타자들의 모습을 다루었지만 이들의 존재 양상은 다양한 변화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국영화 100년 역사에서 60년 이상을 차지하는 냉전 시대는 불행하게도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한국전쟁과 한민족의 적대 그리고 분단 시대 좌우의 첨예한 대립이 현재까지도 한국인의 삶을 곤혹스럽게 하는 근본적 요소로 작용하는 가운데 글로벌 자본주의의 위력은 점차 대중의 삶을 극한으로 내몰아 가는 중이다. 청산되지 못한 냉전과 분단의 역사적 문제를 떠안은 채 글로벌 신자유주의의 강력한 힘에 압살당하고 있는 현재 대중의 삶에 과연 어떻게 접속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도 그래 왔듯이 한국영화는 앞으로도 이러한 대중의 삶에 눈감지 않고 신랄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그것을 영화 속 세계로 녹여 내 타자화된 존재들을 어루만질 것이다. 또한 누군가 냉전 대한민국의 대중이 직면한 이 아픈 현실을 파헤치는 데 관심을 갖고 논의를 시작한다면 이 책이 작은 위로와 보탬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