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사 연구에 독보적 업적을 쌓은 저자 정진석(한국외대 명예교수) 교수의 일제 식민지 치하의 태평양전쟁, 민족사의 대 변환점이었던 8.15해방, 6.25전쟁 기간의 언론과 문학을 실증적으로 탐구하는 책이다. 이 책은 자진하여 북으로 올라간 공산주의자들이 어떤 운명에 처했는지, 전쟁의 와중에 언론과 문학은 어떤 역할을 했으며 동시에 어떠한 시련을 겪었는지를 사건 중심으로 풀어가며 심층적으로 규명하고 재구성했다. 2012년에 펴낸 초판을 대폭적으로 수정하고 한 부(월북-납북 문화인과 언론의 기능)를 새로 써 넣어 완전히 새로운 책으로 만들었다.
증보판 서문 3
초판 서문 6
제1부 _ 해방공간 6·25전쟁기의 언론
제1장 좌익 언론과 언론인들 21
1. 미군정기 남한의 언론 상황 21
2. 남한의 좌익언론 31
3. 공산당 기관지와 좌익 언론인들 44
4. 우익을 향한 공격 67
5. 좌익지의 몰락 81
제2장 남침 전쟁에 동원된 언론인 89
1. 광복 직후 북한의 신문 89
2. 전쟁 직후의 신문과 언론인들 99
3. 전쟁 중의 신문과 언론인들 115
4. 전쟁 종군기자들 135
제3장 북으로 간 언론인과 문인들 151
1. 자진 월북파 151
2. 두 갈래 운명 170
제4장 정치재판과 피의 숙청 180
1. 연출된 재판 예정된 결말 180
2. 피고는 사형, 가족은 알거지로 201
제2부 _ 월북-납북 문화인과 언론의 기능
제1장 납북과 월북 문화인들 229
1. 국회의원, 법조인, 의사, 교수 229
2. 전쟁 이전 월북 문화인들 232
3. 전쟁 전 북한의 문학예술 잡지 241
4. 6·25전쟁 이후 북한의 문학예술인들 248
5. 월북 문화인의 작품 금지와 해금 257
제2장 김일성에서 시작된 북한 언론역사 270
1. 신문은 사상적 무기 270
2. 『조선신문 100년사』의 체제 273
3. 주체의 혁명적 신문 276
4. 분단시대 언론사 시기 구분 278
5. 인민의 복수심 조장 281
제3장 북한의 보도 문장과 용어 283
1. 객관보도를 부정 283
2. 단평란 폐지 287
3. 한글전용 가로쓰기와 ‘문화어’ 290
4. 보도문장과 거친 용어 292
5. 남한 언론의 북한보도 296
제3부 _ 태평양전쟁기 문학과 언론의 수난
제1장 김진섭의 반전反戰기사 필화와 문인들 301
1. 매일신보와 경무국 도서과 301
2. 후유증과 시대상황 315
제2장 단파방송 수신사건과 옥사한 두 언론인 327
1. 유언비어 유포죄 327
2. 역사학자가 된 문석준, 미국 석사 홍익범 335
제3장 일제 고등경찰 사이가의 최후 347
1. 독립운동가 고문으로 악명 347
2. 죄값으로 피살 358
제4부 _ 전쟁 후유증과 친일문제
제1장 월북 언론인 이갑섭의 ‘조보’ 연구 371
1. 남북한의 조보 연구 371
2. 북한의 언론사 연구 382
제2장 문둥이 시인 한하운과 올챙이 기자 오소백 393
1. “피빛 기빨이 간다” 393
2. 전쟁 후의 ‘문화 게릴라’ 논쟁 408
제3장 여운형의 ‘친일’과 조선중앙일보의 폐간 424
1. 장지연과 여운형의 ‘친일’ 424
2. 친일의 형평성 문제 436
참고문헌 447
색인 453
북한의 언론
올해는 6․25전쟁 70주년이다. 전쟁 중에 북으로 끌려간 민간인은 이름과 주소를 확인할 수 있는 사람만 8만 2,959명이다. 통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12만 명이 넘는다는 기록도 있다. 그 가운데 많은 언론인과 문화인이 포함되어 있다. 정치인, 법조인, 의사, 교수, 종교인 등 넓은 범주의 문화인도 많다.
광북 직후 좌익 언론은 남한에서 합법적인 활동을 벌였던 시기도 있었다. 『조선인민보』, 『해방일보』, 『노력인민』이 대표적인 좌익신문이었고, 좌익신문이 정부 수립 이후에 자취를 감추었지만 6․25전쟁으로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한 지 4일 후부터 『조선인민보』와 『해방일보』는 다시 발행되었다.
전쟁시기의 언론과 문학은 정치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숙명에 처하게 된다. 전쟁은 언론과 문학에 통제를 가할 수 있는 명분을 지닌다. 8ㆍ15광복이라는 민족사의 대 변환점을 가운데 놓고 그 앞과 뒤에 태평양전쟁과 6ㆍ25전쟁이 있었다. 두 전쟁 기간의 언론과 문학은 적이 통치하는 지역에 남겨진 포로와 유사한 형태로 위축되고 절박한 상황에 처했다. 식민지 치하에서는 ‘친일’이 후유증으로 남았고, 6ㆍ25전쟁 시기에는 이념문제가 생과 사를 갈랐다.
한국 언론사 연구에 독보적 업적을 쌓은 정진석(한국외대 명예교수) 교수는 일제 식민지 치하의 태평양전쟁, 민족사의 대 변환점이었던 8․15해방, 6․25전쟁 기간의 언론과 문학을 실증적으로 탐구하는 책을 펴냈다. 『전쟁기의 언론과 문학』(소명출판)은 자진하여 북으로 올라간 공산주의자들이 어떤 운명에 처했는지, 전쟁의 와중에 언론과 문학은 어떤 역할을 했으며 동시에 어떠한 시련을 겪었는지를 사건 중심으로 풀어가며 심층적으로 규명하고 재구성했다. 2012년에 펴낸 초판을 대폭적으로 수정하고 한 장을 새로 써 넣어 완전히 새로운 책으로 만들었다.
언론인과 문인에게는 고난의 나날이었다. 언론의 자유, 표현과 창작의 자유 따위는 사치스러운 이야기였다. 신변의 안위를 먼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엄중한 시기였다. 남과 북이 치열한 이념논쟁으로 대립하면서 총부리를 맞대고 처절한 싸움을 벌이던 때에 잘 못 선택한 길로 들어섰거나 순간적인 판단착오로 영원히 가족과 이별하고 생사를 알 수 없게 된 언론인과 문인이 많았다.
저자는 2차 대전 기간의 일제 고등경찰 수사기록, 6․25전쟁 전과 후의 북한 『로동신문』, 『민주조선』, 로동당 이론잡지 『근로자』, 남로당 숙청 재판기록, 로동당 문헌 등을 실증적으로 조사하여 집필했다. 『전쟁기의 언론과 문학』은 특히 북한에서 휴전 일주일 뒤에 남로당 계열 정치인과 언론인이자 문인들을 숙청하는 정치재판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사실적, 입체적으로 추적하고, 언론사와 문학사의 시각에서 정치투쟁의 핵심적인 사건에 접근하였다.
특히 북한에서 휴전 일주일 뒤인 1953년 8월에 남로당 계열 정치인과 언론인이자 문인들을 숙청하는 정치재판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사실적, 입체적으로 추적하고, 언론사와 문학사의 시각에서 정치투쟁의 핵심적인 사건에 접근하였다.
북으로 갔던 남로당 계열 언론인과 문인은 숙청의 비운을 맞았지만 남한에서는 전쟁이 끝난 후에 월북 문화인들의 작품이 학술연구 목적에 국한하여 단계적으로 허용되다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전후하여 대폭해금되었다. 소설가와 시인 등 문인만 아니라 미술, 음악, 무대예술에 이르는 광범한 분야 예술인들이 해금되어 현재는 제한 없이 활용되고 있다. 증보판은 이 같은 변화까지를 추적하고 있다.
김일성은 휴전 직후에 박헌영을 추종하던 남로당 세력에게 피의 숙청을 단행하였다. 시인 임화를 비롯한 남로당 계열 지식인들은 남한에서도 그랬지만 북으로 올라가서 언론과 문학을 무기로 남조선의 ‘해방’을 외치며 혼신을 다해서 투쟁했지만 비참한 말로가 기다리고 있었다. 언론과 관련이 있는 여러 문인들이 북한에서 처참한 최후를 맞았던 사건도, 저자는 언론역사 연구의 관점에서 살펴보고 있다. 임화와 이태준은 1951년 4월 26일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가 최고 등급 국기훈장(제2급)을 수여한 문학·예술인 7명의 일원이었다. 하지만 불과 2년 뒤에 두 사람의 문학은 매도당했고 임화는 재판정에 서서 자신의 입으로 ‘죄과’를 자백하는 치욕스러운 수모를 겪은 뒤에 네 가지 법률 위반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북한의 군사법정은 그를 네 번 죽어야 마땅할 인물로 판결했다.
이 책은 단파방송 수신사건으로 투옥되었던 문석준의 옥사(1943), 총독부 고등경찰 사이가 시치로 암살사건(1945), 한센병 시인 한하운의 「보리피리」 필화(1953), 여운형의 친일 문제 등이 전쟁과 관련된 사건을 추적하고 있다. 왕조시대의 정보전달 매체였던 「조보」에 관한 논문을 집필했던 월북 언론인 이갑섭의 이름은 논문집에서 삭제된 사연 역시 돌아보고 있다. 모두 전쟁이 언론인의 운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주는 사건들이다.
북한 언론과 문학에 관련된 자료는 극히 제한되어 있고, 접근도 어려웠다. 눈치 보지 않고 연구할 여건도 아니었다. 이 책은 시간과 노력을 담아 한국 언론사와 문학사의 지평을 북한까지 확대하는 데 선두를 점할 것이다. 더불어 전쟁기의 문학과 언론을 다루는 이 책에서 비단 전쟁기의 문제만을 읽어낼 수 있지는 않을 것이다. 역사와 문학이 그러하듯 당대의 사회적 문제를 담아내는 데 있어,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현재의 어려운 언론의 문제를 함께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언론과 문학과 정치의 함수관계
태평양전쟁에서 6ㆍ25전쟁까지의 기간 동안, 언론과 문학은 경계를 긋기 어려울 정도로 밀접했다. 언론계에 종사하는 문인이 많았고 임화, 이원조, 김남천, 설정식은 문인이면서 언론인이었다. 좌익 언론이 남한에서 합법적인 활동을 벌였던 시기이기도 했다. 『조선인민보』, 『해방일보』, 『노력인민』이 대표적인 좌익신문이었고, 좌익신문이 정부 수립 이후에 자취를 감추었지만 6ㆍ25전쟁으로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한 지 4일 후부터 『조선인민보』와『해방일보』는 다시 발행되었다.
한국 언론사 연구에 독보적 업적을 쌓은 정진석(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교수는 일제 식민지 치하의 태평양전쟁, 민족사의 대 변환점이었던 8ㆍ15 해방, 6ㆍ25전쟁 기간의 언론과 문학을 실증적으로 탐구하는 책을 펴냈다. 『전쟁기의 언론과 문학』(소명출판, 2012)은 북으로 올라간 공산주의자들이 어떤 운명에 처했는지, 전쟁의 와중에 언론과 문학은 어떤 역할을 했으며 동시에 어떠한 시련을 겪었는지를 사건 중심으로 풀어가며 심층적으로 규명하고 재구성했다. 이는 저자가 일제 고등경찰의 수사기록, 북한의 『로동신문』, 『민주조선』, 로동당 이론잡지 『근로자』, 재판기록, 로동당 문헌 등을 꼼꼼히 조사하여 집필한 결과이다. 『전쟁기의 언론과 문학』은 특히 북한에서 휴전 일주일 뒤에 남로당 계열 정치인과 언론인이자 문인들을 숙청하는 정치재판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사실적, 입체적으로 추적하고, 언론사와 문학사의 시각에서 정치투쟁의 핵심적인 사건에 접근하였다.
수필가 김진섭은 “전쟁은 설사 그것이 정의를 위한 불가피의 전쟁일 경우에 있어서도 문화의 두려운 파괴자인 것은 두말할 것이 없다”는 글을 썼다가 일본 헌병대에 불려가서 곤욕을 치렀다. 1940년 1월에 있었던 이 필화는 언론과 문인의 수난이 겹치는 사건이었다. 소리 없이 진행된 사건이었지만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편집 간부들이 연쇄적으로 신문사에서 물러나는 사태가 벌어지는 필화로 확대되었다.
전쟁기는 언론인과 문인에게는 고난의 나날이었다. 언론의 자유, 표현과 창작의 자유 따위는 사치스러운 이야기였다. 신변의 안위를 먼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엄중한 시기였다. 식민지 치하에서는 ‘친일’이 후유증으로 남았고, 6ㆍ25전쟁 시기에는 이념문제가 생과 사를 갈랐다. 남과 북이 치열한 이념논쟁으로 대립하면서 총부리를 맞대고 처절한 싸움을 벌이던 때에 잘못 선택한 길로 들어섰거나 순간적인 판단착오로 영원히 가족과 이별하고 생사를 알 수 없게 된 언론인과 문인이 많았다.
북한은 언론과 문학을 전쟁 수행과 정권유지를 위한 선전선동의 도구로 활용했다. 저자는 그 증거로 광복 후 남한에서 발행된 좌익지를 개관하고 언론과 문학을 전쟁의 도구로 활용한 북한의 신문을 구체적인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김일성은 휴전 직후에 박헌영을 추종하던 남로당 세력에게 피의 숙청을 단행하였다. 시인 임화를 비롯한 남로당 계열 지식인들은 남한에서도 그랬지만 북으로 올라가서 언론과 문학을 무기로 남조선의 ‘해방’을 외치며 혼신을 다해서 투쟁했지만 비참한 말로가 기다리고 있었다. 언론과 관련이 있는 여러 문인들이 북한에서 처참한 최후를 맞았던 사건도, 저자는 언론역사 연구의 관점에서 살펴보고 있다. 임화와 이태준은 1951년 4월 26일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가 최고 등급 국기훈장(제 2급)을 수여한 문학ㆍ예술인 7명의 일원이었다. 하지만 불과 2년 뒤에 두 사람의 문학은 매도당했고 임화는 재판정에 서서 자신의 입으로 ‘죄과’를 자백하는 치욕스러운 수모를 겪은 뒤에 네 가지 법률 위반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북한의 군사법정은 그를 네 번 죽어야 마땅할 인물로 판결했다.
그밖에도 이 책은 단파방송 수신사건으로 투옥되었던 문석준의 옥사(1943), 총독부 고등경찰 사이가 시치로 암살사건(1945), 한센병 시인 한하운의 「보리피리」 필화(1953), 여운형의 친일 문제 등이 전쟁과 관련된 사건을 추적하고 있다. 왕조시대의 정보전달 매체였던 「조보」에 관한 논문을 집필했던 월북 언론인 이갑섭의 이름은 논문집에서 삭제된 사연 역시 돌아보고 있다. 모두 전쟁이 언론인의 운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주는 사건들이다.
북한 언론과 문학에 관련된 자료는 극히 제한되어 있고, 접근도 어려웠다. 눈치 보지 않고 연구할 여건도 아니었다. 어려운 시간과 노력을 담아 『전쟁기의 언론과 문학』이 세상에 나왔다. 이 책은 한국 언론사와 문학사의 지평을 북한까지 확대하는 데 선두를 점할 것이다. 더불어 전쟁기의 문학과 언론을 다루는 이 책에서 비단 전쟁기의 문제만을 읽어낼 수 있지는 않을 것이다. 역사와 문학이 그러하듯 당대의 사회적 문제를 담아내는 데 있어,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현재의 어려운 언론의 문제를 함께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정진석
1931년 12월 서울 수표동의 한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났다. 1954년 가톨릭대학 신학부에 입학, 1961년 사제품을 받았다. 로마 우르바노대학에서 교회법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1970년 최연소 주교로 서품되었다. 이후 28년 동안 청주교구장을 지냈고,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등을 역임했다. 1998년부터 2012년까지 서울대교구장과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했다. 2006년 3월에는 베네딕토 16세 교황으로부터 추기경으로 서임되었고, 2007년부터 임기 5년의 교황청 성좌조직재무심의 추기경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최근까지 왕성한 저술 활동을 하고 있으며, 15권에 달하는 교회법 해설서 저술로 자타가 공인하는 교회법의 권위자이기도 하다. 저서로는 「장미꽃다발」, 「라디오의 소리」, 「라디오의 메아리」, 「목동의 노래」, 「교계제도사」, 「교회법원사」, 「말씀이 우리와 함께」, 「말씀의 식탁에서」, 「간추린 교회법 해설」, 「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공동 편찬), 「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 해설」, 「전국 공용 교구 사제 특별 권한 해설」, 「교회법 해설」, 「우주를 알면 하느님이 보인다」, 「구세주 예수의 선구자 세례자 요한」, 「모세(상)-민족 해방의 영도자」, 「모세(중)-율법의 제정자」, 「모세(하)-민족 공동체의 창설자」, 「희망을 안고 산 신앙인 아브라함」, 「믿음으로 위기를 극복한 성왕 다윗」, 「햇빛 쏟아지는 언덕에서」, 「하느님의 길, 인간의 길」, 「안전한 금고가 있을까」, 「가라지가 있는 밀밭」, 「닫힌 마음을 활짝 여는 예수님의 대화」, 「정진석 추기경의 행복 수업」, 「그분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습니다」, 「질그릇의 노래」, 「나를 이끄시는 빛」, 「성숙한 신앙생활」 등 65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