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생명, 호모 사케르
저자의 비평에는 몸이 있다. 몸의 시대가 도래한 오늘날 이 화두는 우리 존재 전반을 아우르는 담론/해석의 주체이다. 『벌거벗은 생명과 몸의 정치』의 화두는 역시 몸으로, 책, 영화, 만화에 등장하는 벌거벗은 생명들을 바라본다. 호모 사케르의 몸은 신체적으로는 사형당하지 않았지만 시민으로서의 모든 법적 권리를 박탈당한 존재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이들은 난민, 노숙자, 불법 체류자, 수용소 수감자(포로, 정치범), 탈북자 등의 이름으로 우리 사회에 현현한다. 이들에 대한 주권 권력의 배제와 포함의 문제는 한 국가의 생명 가치에 대한 인식과 정치 감각을 넘어 전 지구적 혹은 전 인류적 차원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낯선 타자(난민, 노숙자, 불법체류자 등)는 스스로 연대하거나 주체성을 강화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들의 연대는 이들을 하나의 타자로 인정하고 함께 삶의 지평을 열어 갈 존재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타자성’에 대한 인식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벌거벗은 생명으로서 이들의 몸을 자신과 차별이 아닌 차이로 인정한다거나 이것을 통해 나 자신의 존재성을 뒤흔들어 일정한 자각에 이르는 미래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몸의 정치의 또 다른 중요한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저자는 벌거벗은 생명으로서의 몸은 회복되어야 하며, 벌거벗은 생명에 대한 망각으로부터 깨어나 반성과 연대를 모색하는 것은 저자의 비평이 열어가야 할 또 다른 지평이라고 말한다.
제1부_벌거벗은 생명의 서序
소설 사회학과 생명의 정치학_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_비페이위의 『마사지사』
디아스포라와 벌거벗은 생명에 대한 헌사_김학철, 아나톨리 김, 김석범, 유미리, 현월, 가네시로 가즈키를 중심으로
실존은 어두운 싸움의 기록이다_박정범의 <무산일기>
빅 브라더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_조지오웰의 『1984』
제2부_욕망의 역사와 추의 미학
성욕과 식욕의 역사_추醜의 미학과 새로운 문학의 지형도
동물적인 자유, 인간적인 자유_장용학의 「요한 詩集」과 『圓形의 傳說』
‘자연스럽다’, ‘자유롭다’_강도하의 <발광하는 현대사>
권태의 발견과 인간의 지평_몸문화연구소의 『권태-지루함의 아나토미』
제3부_몸의 연대와 주체의 탄생
젠더 이데올로기와 여성성의 발견_운동으로서의 여성의 몸과 정치
상처와 통과제의 그리고 여성 주체의 탄생_티에닝의 『목욕하는 여인들』
작은 촛불이 강한 어둠을 이긴다_현길언의 『열정시대』
아 유 오케이, 아임 오케이_방은진의 <집으로 가는 길>
제4부_추락과 상승 혹은 초월의 심층
추락하는 것은 아름답다_천운영의 『잘 가라, 서커스』
욕, 신명에 이르는 한 방식_<봉산탈춤>, 「흥부전」, 「오적」, 『손님』
카타르시스를 넘어 신명으로_박찬경의 <만신>
역사적 정신태를 넘어 넋으로_이청준의 『신화의 시대』
이들이 연대를 통해 만들어 낸 것이 ‘고소설구’라는 음식이지만 여기에는 이들의 연대의 견고함이 은폐되어 있다. 이 고소설구를 만드는 과정에서 보인 이들의 집중력과 진정성은 어디 한 군데 틈조차 허락하지 않을 정도로 견고하다는 점에서 그것은 의식의 질적 도약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들이 힘을 합쳐 만들어낸 고소설구가 표상하듯이 어떤 하나의 세계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견고한 연대가 필요한 것이다. 이 연대는 불순한 것들이 들어오면 그 연대가 공고함을 상실하게 되는 것처럼 무엇보다도 구성원 간의 어떤 세계에 대한 공유의 순수함의 정도가 커야만 성립될 수 있다. 페미니스트들이 여성의 순수한 존재성만으로 이루어진 세계를 꿈꾼다거나 아니면 자신들이 만든 세계에 남성을 존재하게 하면서 마치 어머니 품 안에 안긴 아이처럼 그것을 이야기하는 경우 이들이 겨냥하고 있는 것은 여성적인 연대의 견고함이다.
―'상처와 통과제의 그리고 여성 주체의 탄생' 중에서
이재복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이상 소설의 몸과 근대성에 관한 연구」(2001)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6년 『소설과 사상』 겨울호에 평론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쿨투라』, 『본질과 현상』, 『시와 사상』, 『시로 여는 세상』, 『오늘의 소설』, 『오늘의 영화』 편집기획위원을 역임했다. 고석규비평문학상, 젊은평론가상, 애지문학상(비평), 편운문학상, 시와표현평론상을 수상했다.
현재 한양대학교 한국언어문학과 교수 겸 한양대 미래문화연구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몸』, 『비만한 이성』, 『한국문학과 몸의 시학』, 『현대문학의 흐름과 전망』, 『한국 현대시의 미와 숭고』, 『우리 시대 43인의 시인에 대한 헌사』, 『몸과 그늘의 미학』, 『내면의 주름과 상징의 질감』, 『벌거벗은 생명과 몸의 정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