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 문학의 키워드는 ‘죽음’
저자는 권정생 문학의 핵심어가 ‘죽음’ 임을 작품의 내밀한 분석을 통해 증명하고자 했다. 권정생 문학을 초기, 중기, 후기로 대별하여 그 내용과 형식, 메시지 면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여주는 동화, 소년소설과 소설, 판타지라는 세 가지 주도적 문학양식을 중심으로, ‘죽음’이라는 키워드가 어떻게 양상을 달리하여 드러나는지를 밝혀냈다. 또 이 ‘죽음’에 대한 작가의 인식이 그의 문학 사상과는 어떤 관련이 있으며, 작가로서 그만이 가지는 특성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도 밝혔다. ‘죽음’의 문제는 그의 문학적 출발 지점인 「강아지똥」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여 거의 모든 작품을 관통하여 흐르고 있다. 그에게서 죽음은 원초적인 문학 충동인바, 기존의 아동문학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았던 ‘죽음’의 문제를 전면에 등장시키고 깊이 천작해 감으로써, 그의 문학은 기존의 아동문학과 궤를 달리하는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였던 것이다.
그의 초기 작품을 보면, ‘죽음’이라는 상황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이 ‘죽음’의 문제는 초기 동화뿐 아니라 그의 문학 전반에 걸쳐 줄곧 다양한 형태로 변주된다. 초기 동화에서는 삶을 위협하는 존재로 ‘죽음’이 등장하고, 중기의 소년소설과 소설에서는 극빈과 전쟁과 질병 및 장애의 모습으로 ‘죽음’이 등장하며, 후기의 장편 판타지 동화에서는 약자의 삶을 위협하는 자본과 권력의 모습으로 ‘죽음’이 등장한다. 즉 그의 문학 활동은 삶을 위협하는 ‘죽음’을 자각하고, ‘죽음’을 비판하고, ‘죽음’을 넘어서는 대안을 제시하는 행위였던 것이다.
권정생은 기존의 아동문학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던 강아지똥, 똘배, 깜둥 바가지 등의 소외되고 버려진 것들을 작품에 등장시킴으로써, 기존 아동문학의 동심천사주의적인 경향을 벗어나 아동문학의 외연을 크게 확장시켰다. 그는 밑바닥 인생의 다양한 모습은 물론 귀신이나 톳제비, 달걀귀신, 하느님이나 예수까지 작품에 등장시켜 아동문학의 소재를 크게 넓혔다. 이러한 소재상의 새로움은 지금도 여전히 권정생 문학이 지닌 독자적 영역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그는 자신이 직접 체험한 사실, 주변 사람들의 체험과 어머니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작품화함으로써, 사실성을 부여 받음과 더불어 풍요로운 서사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의 작품의 특징으로 꼽히는 유려한 문체, 다양한 의성어와 의태어, 풍부하면서도 적실한 사투리의 구사, 수많은 동식물들의 이름 등의 활용은 그만의 독특한 창작방법과도 긴밀한 관계가 있다. 그는 구술문화와 문자문화가 만나는 지점에 서 있는 작가로서, 다양한 형식의 ‘이야기’류들을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구체적인 창작적 실천을 이루어냈다. 즉 그는 근대문학의 규범적 테두리 안에 갇히지 않고 전통적인 여러 양식―가령 옛이야기, 전래동요, 성서의 비유, 성서의 구절, 몽유록이나 논쟁적인 대화소설 양식 등―을 적절하게 활용함으로써 아동문학사에 형식적 새로움을 부여했다. 특히 성서는 사상적으로나 형식적으로 그에게 중요한 문학적 서브텍스트로 작용했다. 성서는 온갖 ‘이야기’의 창고였으며, 그 성서의 예언자들과 예수의 생애는 그가 자신의 삶과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 중요한 잣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권정생 문학의 주도적 양식과 문학 사상
권정생의 문학은 초기, 중기, 후기로 나눌 수 있다. 환상성이 두드러지는 초기의 단편 동화에서는 죽음과 원죄의식, 죽음에 대한 실존적 자각과 자기결단, 현실 지평의 확대가 확인된다. 죽음이라는 실존의 문제를 자각하고 자기 결단을 통해 타자와의 연대를 꿈꾸며, 이를 통해 삶의 지평이 현실로 확대되어 가는 모습이 초기의 동화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단편 동화는 자신의 실존적 체험을 주로 다루고 있어 ‘나의 이야기’라고도 할 만한데, 여기에서는 키르케고르적 기독교 실존주의의 영향이 뚜렷하게 확인된다. 본고에서는 권정생 문학과 기독교 실존주의와의 연관성을 처음으로 밝히고, 성서가 그의 문학의 서브텍스트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작품 분석을 통해 확인하였다. 또 초기 동화에서 드러난 문제의식이 이후 소년소설과 소설, 장편 판타지 동화에서 반복하여 드러나고 있음도 확인할 수 있었다.
중기에는 사실성이 지배적인 소년소설과 소설을 통해서 역사적 증언의식, 반전의식과 체제 비판(제도 및 이데올로기 비판, 관료제 비판), 상부상조와 생명존중 사상 등을 보여준다. 특히 민중의 삶을 갖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파노라마적으로 보여주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작가는 이러한 작품들을 통해 극빈, 질병과 장애, 전쟁으로 나타나는 죽음의 구체적이고도 다양한 면모를 고발하고 비판하며, 이렇게 모질고 고통스러운 삶에도 불구하고 면면히 이어지는 민초들의 삶을 그려냄으로써 궁극적으로 ‘생명’이 ‘죽음’을 이겨내는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다. 소년소설 및 소설은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우리의 이야기’라고도 할 만하다. 여기에서는 함석헌의 ‘씨알사상’과 더불어 성서의 ‘지극히 작은 자’, 즉 보잘것없는 밑바닥 인생이야말로 바로 ‘하느님’이라는, 톨스토이의 영향이 뚜렷한 기독교 아나키즘적 사상이 드러난다. 또한 권정생이 자신의 경험 및 주변 사람들의 체험, 어머니를 비롯한 윗세대에서 전해 오는 이야기들을 자신의 작품에 대폭 수용함으로써 ‘이야기꾼’의 면모를 지닌 작가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후기의 판타지에서는 ‘지금․여기’의 현실 비판, 기성 기독교 비판, 대안적 삶과 유토피아 의식을 보여준다. 권정생은 ‘지금․여기’의 현실에서 자본과 권력이 곧 인간의 삶을 억압하는 ‘죽음’이라고 비판한다. 이에 대해 이 땅의 분단을 종식하고 통일과 평화를 가져오며 농사지으며 소박하게 사는 삶을 그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평화롭고 소박한 삶이 마침내 ‘죽음’을 이겨내고 풍요로운 유토피아에 이르는 것으로 제시되고 있다. 또 권정생의 기성 기독교에 대한 비판은 ‘지금․여기’의 현실비판과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음이 특징적인데, 성서 중심의 신앙을 지녔던 그에게는 밑바닥 인생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이 더 큰 교회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어머니 같은 모성적 하느님’과 ‘이 세상 끝까지 고통 받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하느님’이라는 카톨릭 작가 엔도 슈사쿠의 예수상, ‘기독교인은 예수처럼 살아야 하며 사회 문제를 절대 외면하면 안 된다’는 목사이며 빈민운동가이며 기독교사회주의자인 작가 가가와 도요히꼬의 예수상이 권정생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처음으로 밝힌 것은 본고가 얻어낸 또 하나의 수확이다. 또한 한국적 기독교를 주장했던 신학자이자 기독교 다원주의자였던 변선환과의 사상적 공통점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권정생은 모순된 현실에 대한 대안적 삶의 형태로 ‘통일’과 ‘농업’을 제안하는데, 이는 모든 인간과 동식물이 함께 평화롭게 사는 낙원을 지향하는 유토피아 사상을 담고 있다. 다시 말해 이것은 성서의 다시 찾은 ‘새 하늘과 새 땅’과도 유사한 사유인 바, 장편 판타지 동화를 통해 그는 기독교 아나키즘의 사상을 거쳐 에코 아나키즘으로 사상적 전화(轉化)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권정생 문학에서의 ‘죽음’의 의미
이 책은 권정생이 평생 ‘죽음’이라는 화두를 붙잡고 문학 활동을 해왔음을 밝혔는데, 그것은 역설적으로 그가 ‘죽음’에 맞서 ‘생명’을 추구했음을 의미한다. ‘죽음’을 화두로 출발한 그의 문학은 원초적으로 종교성을 띠고 있는 바, 그것은 바로 ‘부활’과 ‘구원’의 종교인 기독교 사상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종교는 단지 기독교 신앙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작품을 통해 그만의 고유한 문학 사상으로 발전해 갔다.
문학 사상의 측면에서 보자면, 그는 기독교의 실존주의 사상에서 출발하여 기독교 아나키즘, 생태 아나키즘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이것은 서로 따로 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관한 실존적 자각과 더불어 ‘지극히 작은 자’에 대한 애정으로 발전하고, ‘지극히 작은 자’가 바로 ‘하느님’이라는 사상으로, 그리고 나아가 사람만이 아니라 천지만물 속에 하느님이 있다는 생각으로 발전해 나가는 계기(繼起)적 과정을 이루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는 ‘하느님과 자연은 하나’라는 사유에 최종적으로 도달한 것이다. 이러한 하느님 사상은 ‘도가 바로 자연’이라는 노장사상과도 이어진다고 볼 수 있으며, 또 “예수님이 이 사람들 속에 내가 있고 내 속에 하느님이 계신다”는 생각은 삼라만상 가운데 부처가 미만하고 있다는 불교의 화엄사상과도 상통하는 것이다.
또한 권정생의 현실 비판 의식과 기독교 사상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권정생의 사상은 인간다운 삶을 막는 것에 현실에 대해 근본적인 비판을 하는 ‘성서의 예언자 사상’과 잇닿아 있다. 이 예언자 사상은 함석헌이나 톨스토이에게서도 보이듯이 기독교적 아나키즘에 닿아 있다. 나아가 이러한 아나키즘적 요소는 무소유와 생명 중심의 생태아나키즘으로 발전한다. 권정생에게서 행복한 삶이란 발전된 문명 속에 있지 않다. 서로 사랑하며 소박하게 살아가는 가난한 삶, 농사를 짓고 살아가는 삶 속에 행복이 있다. 가능한 한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삶 속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처럼 권정생은 나쁜 제도를 근절하고자 하는 좋은 제도를 말하지 않는다. 나쁜 권력을 대체할 좋은 권력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사람이 사람답게 되고, 자연이 자연답게 되어 아름답게 사는 삶을 이야기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런데 그의 작품에 나타난 죽음은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대개 그의 작품에서 ‘죽음’은 삶을 억압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죽음’을 극복하는 것 역시 ‘죽음’이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던져 ‘죽음’으로써 타인에게 온전히 새로운 ‘생명’을 가능하게 하는 형태로 나타나는 바, 「강아지똥」에서 강아지똥의 죽음, 『한티재 하늘』에서 여종 오월이의 죽음, 『밥데기 죽데기』에서 늑대할머니의 죽음은 이러한 사유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이러한 사유의 밑바탕에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고자 했던 ‘희생양 예수의 죽음’이 음각화로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십자가의 예수’는 그의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것이다.
권정생 문학은 삶과 죽음이라는 실존적 화두로부터 출발한 문제의식을 사회와 역사의 지평으로 확대시키며 기존의 아동문학의 관습적 틀을 훌쩍 뛰어넘어 전근대/근대적 양식과 현실/판타지의 경계를 넘나들며 아동/어른의 인식과 사상의 벽을 허물어뜨린 점에서 동심천사주의적 경향에 강박되어 있던 한국아동문학의 외연을 확장시키고 사상과 내용의 깊이를 확보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책머리에
권정생 문학으로 들어가기
1. 왜 권정생을 다시 읽는가
2. 권정생 문학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들
3. 어떻게 권정생을 새롭게 읽을 것인가
권정생의 삶과 문학
1. 권정생 문학의 키워드-가난․전쟁․질병과 ‘죽음’
2. 등단 과정 및 창작 활동
3. 사회적․문학적 교유와 작가의식의 형성
초기 문학과 사상(1969∼1980):동화와 기독교 실존주의
1. 죽음과 원죄의식
1) 성서적 원죄의식
2) 낙원상실의식과 부활의 사상
2. 실존적 자각과 자기 결단-기독교실존주의
1) 죽음에 대한 실존적 인식
2) 죽음 인식을 통해 본 권정생의 아동관과 문학관
3) 키르케고르의 기독교실존주의와의 연관성
4) 자기결단-키르케고르적 역설
3. 확장된 삶의 지평과 현실 비판
1) 분단 현실 인식
2) 현실의 모순과 전쟁 비판
중기 문학과 사상(1981∼1990):소년소설 및 소설과 기독교 아나키즘
1. 역사적 증언으로서 소설 선택
1) 권정생의 예수상(像)
2) 함석헌의 ‘씨알’사상과의 연관성
3) 톨스토이의 기독교아나키즘의 영향
4) 중기 소년소설의 특징과 의미
2. 반전의식과 체제 비판-전쟁 소재의 장편소설 분석
1) 장편 『꽃님과 아기양들』 분석
2) 장편 『몽실 언니』 분석
3) 장편 『점득이네』 분석
4) 장편 『초가집에 있던 마을』 분석
5) 톨스토이의 비폭력․반체제 사상과의 연관성
3. 상호부조와 생명존중 사상
1) 상호부조론과 아나키즘적 사유
2) 장편 『한티재 하늘』 분석
후기 문학과 사상(1991∼2007):판타지와 생태 아나키즘
1. 판타지 양식의 선택
2. ‘지금․여기’의 현실 비판-기성 기독교 비판
1) 『도토리 예배당 종지기 아저씨』 분석
2) 『팔푼돌이네 삼형제』 분석
3) 기성 기독교 비판과 생태적 사유
4) 동반자 예수상-엔도 슈사쿠와의 연관성
5) 무교회주의 및 종교다원주의-정호경, 변선환, 가가와 도요히꼬와의 연관성
3. 대안적 삶과 유토피아 의식
1) 유토피아적 상상력
2) 『밥데기 죽데기』 분석-평화통일에의 꿈
3) 『랑랑별 때때롱』 분석-생태적 판타지
권정생 문학의 미적 특성
1. 알레고리
1) 알레고리의 개념
2) 권정생 문학의 알레고리적 특징
3) 권정생 문학의 ‘우언’적 성격
2. 구술성
1) ‘이야기꾼’으로서 작가 권정생
2) 권정생 문학의 문체적 특징-구술성과 대화법
3) 권정생 문학의 구성적 특징-명명법, 캐릭터와 플롯
3. 상호텍스트성
마무리_ 권정생 문학 연구의 의의와 과제
보론_ 그림책 글, 다시 쓰기와 새로 쓰기:권정생의 그림책을 중심으로
1. 머리말
2. 기존 작품의 개작-그림책에 맞게 글 다시 쓰기
3. 옛이야기 다시 쓰기와 새로 쓰기
4. 맺음말
참고문헌
지은이_엄혜숙(嚴惠淑, Eom Hye-Suk)
연세대 독문학과 및 동대학원 국문학과(석사), 인하대 대학원 국문학과(박사)를 졸업했다. 웅진, 비룡소, 보림, 한솔교육에서 아동도서를 기획하고 편집했다. 저서로는 『보름간의 문학여행』, 『나의 즐거운 그림책 읽기』가, 번역서로는 『개구리와 두꺼비는 친구』, 『깃털 없는 기러기 보르카』, 『나』, 『너』 등 수백 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