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박인환 | 역자/편자 | 엄동섭, 염철, 김낙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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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20.9.21 | ||
ISBN | 9791159055584 | ||
쪽수 | 1,035 | ||
판형 | 신국판 양장 | ||
가격 | 48,000원 |
<박인환 문학전집> 2권 산문,번역편으로 2008년에 출간된 전집에 수록되지 않은 37편의 작품이 추가로 실려있다. 기존 출간된 <박인환 문학전집> 시 편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시인 박인환의 면모를 만났다면, 이번 산문 편에서는 인간 박인환에 대해 더욱 깊이 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5부에는 <박인환 문학전집> 1권 이후 발굴된 5편의 시도 추가적으로 실었다.
머리말
제1부 평론
문학
시단(詩壇) 시평(時評)
<신시론>1집 후기
김기림 시집 <새노래>평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김기림 장시 <기상도(氣象圖)>전망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서문 장미의 온도
신간평 조병화 시집<버리고 싶은 유산(遺産)
고(故) 변(邊) 군(君)
금년 7월 17일은 변 군이 익사한 날이다. 7월 18일, 나는 야외 교련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양복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집안에 들어가자 어머니와 숙모가 무슨 일이라도 있는 듯이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가, 내가 들어가자 황급히 대화를 멈추었다. 나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재빨리 어머니에게 물어보았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숙모가 ‘저…, 변 군이 익사했기 때문에 휘문중학교에서 학교장(學校葬)을 한 거야’라고 말했다. 나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고 ‘정말입니까?’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라고 말할 수 없이 슬픈 일이구나. 변 군은 나의 유일한 친구이고, 나도 그의 최선의 친구였다. 나는 우왕좌왕하지 않고 곧장 집을 나왔다. 그리고 휘문중학교에 가서 그가 죽은 것에 대해 물어봤다. 그곳에 계시던 선생님이 눈물을 머금은 채 자세히 가르쳐 주었다. 나는 힘없이 그의 학교를 나왔다. 그리고 변 군의 집으로 서둘러 갔다. 그의 집에 도착하자, 갑자기 눈물이 나서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마음속에서 뜨겁게 치솟는 눈물을 억누르면서 집으로 들어갔다. 툇마루 쪽을 들여다보니, 그의 어머니는 얼굴이 붉어지고 평소보다 부어 있었다. 아마 슬픔 나머지 울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툇마루 근처까지 다가갔다. 그의 어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내 손목을 쥐고, 땅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울기 시작했다. 나는 안타까움에 말도 하지 않고 지금은 죽은 변 군의 방을 들여다보았다. 책상 위에는 가방과 곤충 채집기 그리고 페인트 상자가 주인을 기다리는 것처럼 가로놓여 있었다.
뭐라 말하기 어려운 슬픈 장면이었다. 잠깐 동안 침묵이 흘렀다. 얼마간 그의 어머니를 위로했지만 울기만 할 뿐이다. 나도 끊임없이 눈물이 나온다. 변 군의 집에 있던 어떤 사람이, ‘당신이 여기에 와 있으면, 어머니가 더욱 슬플 수도 있으니까 어서 돌아가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곳에 조금이라도 더 머물고 싶었다. 옛날처럼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하지만 이제 또 변 군의 집으로 찾아갈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는 수 없이 발길을 밖으로 돌렸다. 그러자 변 군의 어머니는 ‘윤식潤植이 대신 네 모습이라도 보고 싶다’라고 말하면서 내 뒤에서 절규했다. 나는 모교의 선생님께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학교에 갔다.
내가 2층으로 올라가려는데, 뒤쪽에서 ‘박 군, 변 군이 죽은 것을 알고 있나?’라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작은 소리로 ‘예’라고 속삭였다. 선생님은 어느새, 졸업생을 한 명 잃어버렸다고 말하면서 울고 계셨다. 집에 돌아오니 저녁을 먹을 힘조차 없었다. 그날 밤에는 조금도 자지 않고, 변 군과 함께 산책을 하고 있는 꿈을 꾸었다. 그리고 이삼 일 지나서 마침 나는 변 군의 집 앞을 자나갔다. 예전이라면 물론 그 집에 들어갔을 터이지만, 이제는 변 군이 없는 집에는 다시 들어갈 기력이 생기지 않았다. 그리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변 군의 일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기분이었다고는 해도, 남의 친한 친구를 보면 그의 미소 짓는, 얌전한 얼굴이 자연스럽게 내 눈에 어린다.
저자
박인환
본관은 밀양으로 강원도 인제 출신이다. 1939년 서울 덕수공립소학교를 졸업하고 경기공립중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941년 자퇴하고, 한성학교를 거쳐 1944년 황해도 재령의 명신중학교를 졸업하였다. 그 해 평양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8·15광복으로 학업을 중단하였다. 그 뒤 상경하여 마리서사(茉莉書舍)라는 서점을 경영하면서 김광균 · 이한직 · 김수영 · 김경린 · 오장환 등과 친교를 맺기도 하였다.
1948년에는 김병욱 · 김경린 등과 동인지 『신시론(新詩論)』을 발간하였으며, 1950년에는 김차영 ·김규동 ·이봉래 등과 피난지 부산에서 동인 ‘후반기’를 결성하여 모더니즘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1955년 첫 시집 『박인환선시집』을 낸 뒤 이듬해에 심장마비로 죽었다.
그의 시작 활동은 1946년에 시 「거리」를 『국제신보』에 발표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어 1947년에는 시 「남풍」, 1948년에는 시 「지하실(地下室)」을 『민성』에 발표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시작 활동이 전개되었다.
특히, 1949년 김수영 · 김경린 · 양병식 · 임호권 등과 함께 낸 합동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은 광복 후 본격적인 시인들의 등장을 알려주는 신호가 되었다. 1950년 후반기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밤의 미매장(未埋藏)」, 「목마와 숙녀」 등을 발표하였는데, 이런 작품들은 도시문명의 우울과 불안을 감상적인 시풍으로 노래하여 주목을 끌었다. 1955년에 발간된 『박인환선시집』에 그의 시작품이 망라되어 있으며 특히 「목마와 숙녀」는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으로서 우울과 고독 등 도시적 서정과 시대적 고뇌를 노래하고 있다.
엮은이
엄동섭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해방기 시의 모더니즘 지향성 연구-신시론 동인을 중심으로」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저서에 『탈식민의 텍스트, 저항과 해방의 담론』(공저), 『신시론 동인 연구』, 『원본 진달내꽃 진달내? 서지 연구』(공저) 등이 있고, 「해방기 박인환 시의 변모 양상」, 「한국전쟁기(1951.1~1953.12) 간행 창작시집 목록」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현재 창현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다.
염철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김기림과 박용철의 1930년대 시론을 대비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저서에 『1930년대 문학과 근대 체험』(공저), 『한국 문학권력의 계보』(공저) 등이 있고, 「박인환 시의 진정성」, 「새로운 『박인환 전집』의 기획과 진행 과정」, 「박인환의 최초 발표작 「斷層」에 대하여」, 「박인환 시의 문헌학적 고찰」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현재 경북대학교 기초교육원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김낙현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趙基天 詩 硏究」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저서에 『억압과 망각, 그리고 디아스포라』(공저)가 있고, 「조명희 시 연구」, 「장편서사시 『白頭山』의 창작토대」, 「장편서사시 『생의 노래』 연구」, 「『先鋒』에 수록된 고려인 시의 전개양상」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현재 중앙대학교 다빈치교양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