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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세종도서

아시아적 신체
냉전 한국·홍콩·일본의 트랜스/내셔널 액션영화 / 한국연구원 동아시아 심포지아 005
저자 이영재 역자/편자
발행일 2019.10.15
ISBN 9791159054532
쪽수 462
판형 신국판 양장
가격 3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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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괴조음을 내지르며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이소룡, 그 순간 화면은 정지하고 화면 바깥으로부터 일제히 총소리가 울린다. 그는 죽었을까? 죽지 않았을까? 영화 연구자 이영재의 아시안 액션영화에 대한 연구는 이 프리즘 프레임 속 ‘얼어붙은’ 이소룡의 신체와 국가에 대한 사유로부터 시작한다.


이 책은 전후 국민국가(/식민지 국가)로서의 한국, 일본, 홍콩의 영화가 보이는 ‘적대’와 ‘폭력’의 이미지, 그리고 ‘남성의 신체’가 국가와 자본 사이에서 길항하며 그려낸 아시아의 신체에 대한 기록이다. ‘아시안 마샬 아츠 필름’이라는 이름으로 언어와 국경을 넘어 아시아의 표상을 형성한,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영화의 정사에도 기록되지 못한 액션영화에 대한 방대하고 실증적인 기록을 소개한다.

머리말


서론 싸우는 신체

1. 냉전 아시아라는 연대와 적대의 장

2. 트랜스/내셔널 시네마-영화, 국가와 자본

3. 국가, 폭력, 법에서 시장까지-동아시아 액션영화의 계보

4. 아시안 마샬 아츠 필름-만국의 노동자여, ‘감각’으로 단결하라!


제1장 대륙물과 협객물, 무법과 범법 한국-액션영화의 원천

1. 한 불온시인의 꿈의 지리-김포, 반쪼가리 국제성의 이름

2. 혁명과 쿠데타의 봉합-제3공화국의 성립과 폭력의 기원

3. 만주물-장르로 묻고, 역사에서 배우기

4. 두 적에 맞서-반공와 항일

5. 협객물-‘혁명재판’과 정치 깡패

6. 한국 액션영화에서의 폭력의 계보


제2장 국민의 경계, 신체의 경계-구로사와 아키라와 오시마 나기사의 ‘전후’

1. 패전과 독립-사라진 일본인과 도래할 일본인

2. <라쇼몽>-도래해야 할 과제로서의 ‘보편’

3. <살다>-‘살기’ 위한 망각

4. <잊혀진 황군>-질문으로서의 ‘보편’

5. <교사형>-사형수와 병사의 등가성

6. 아시아적 신체와 국가


제3장 전후 한일의 신체장애영화-망각과 분단의 신체표상

1. 전후 평화국가와 포스트 식민 분단국가의 영화적 신체

2. <쌀>-상이군인과 ‘군법’ 국가의 생성

3. <자토이치>와 <독비도>-맹인과 외팔이라는 정체政體

4. <세이사쿠의 아내>-촉각의 공동체, 연인의 공동체

5. <원한의 거리에 눈이 나린다>와 <삼국대협>-환희 없는 복수, 우스꽝스러운 슬픔

6. 대한민국과 전후 일본, 국가 공동체의 창출과 붕괴


제4장 ‘아시아 영화’라는 범주-아시아 영화제와 합작영화

1. 내셔널 시네마라는 ‘국제적’ 장치

2. ‘아시아’를 둘러싼 문화정치적 기획

3. 1962, 서울, 아시아 영화제

4. 합작 스펙터클 시대극의 흥망성쇠

5. 관객 구성체의 변화-아시아 관객 취향의 구조 변동

6. 오래된 아시아와 새로운 아시아


제5장 트랜스/내셔널 아시아 액션영화-중공업 하이 모던 신체의 증식

1. 도시 하위 계급 남성, 공유하는 관객

2. ‘양강’을 둘러싼 국제적 우애

3. ‘협’과 ‘산업’, 산업화 시대의 아시아적 공통성

4. 트랜스/내셔널 아시아 액션영화

5. 이소룡과 모방하는 신체들

6. 아시아라는 환승역, 세계성이라는 종착역

결론 익명의 상품을 향하여


참고문헌

사진 차례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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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사

모든 ‘브루스 리’를 위하여


독특한 괴조음을 내지르며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이소룡, 그 순간 화면은 정지하고 화면 바깥으로부터 일제히 총소리가 울린다. 그는 죽었을까? 죽지 않았을까?


영화 연구자 이영재의 아시안 액션영화에 대한 연구는 이 프리즘 프레임 속 ‘얼어붙은’ 이소룡의 신체와 국가에 대한 사유로부터 시작한다.

이 책은 전후 국민국가(/식민지 국가)로서의 한국, 일본, 홍콩의 영화가 보이는 ‘적대’와 ‘폭력’의 이미지, 그리고 ‘남성의 신체’가 국가와 자본 사이에서 길항하며 그려낸 아시아의 신체에 대한 기록이다. ‘아시안 마샬 아츠 필름’이라는 이름으로 언어와 국경을 넘어 아시아의 표상을 형성한,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영화의 정사에도 기록되지 못한 액션영화에 대한 방대하고 실증적인 기록을 소개한다.


정의로운 깡패와 맹인 검객


액션영화는 당연한 말이지만 싸우는 영화이다. 액션은 ‘적대’에서 비롯한다.


액션영화는 그 정의상 ‘적대’와 ‘폭력’을 본질로 삼는다. 저자는 이러한 액션영화의 정의로부터, 당대 액션영화가 그려내고 있는 정치적 무의식을 파헤친다. 가령, 군사정권 시절 김두한에서 용팔이까지 이르기까지 협객─ 즉 ’정의로운 깡패’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범법을 통해 법을, 혁명재판을, 국가가 이룩한 ‘질서’를 우회적으로 긍정한다. 또 전후 일본 국민의 한계 지점이자 구제국의 망각을 불가능하게 하는 상이군인(더 정확히는, 전前일본군 한국인 상이군인)은 영화 속에서 은폐되고, 왜곡된다. 그 빈자리는 ‘볼 수 없는’ 혹은 보지 않는 ‘맹인’ 자토이치로 대체된다. 결국 액션영화 속 남성 신체는 한 국가의 정치적 신체political body의 표상이자, 그러한 정치적 기획을 국제적으로 확장하고 매개하려는 상상·욕망·행위에 의해 구성된다는 것을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적은 누구인가? 누가 나의 편인가? 액션영화는 적과 동지를 나누는 ‘정치적인 것의 개념’의 가장 순수한 영화적 환원물이다.


아시아 남성, 잔혹하도록 물리적인 한계치


1970년대, 범람하는 일군의 액션영화 다발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소룡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다. 그러나 과연 이소룡만? 챠리 셀, 바비 킴, 양소룡과 신일룡…… 무수히 많은 이소룡의 아류에서 국적은 모호하고, 그것을 묻는 것조차 무의미하다. 이 영화들은 또다시 전 세계로 퍼져나가며 각양각색의 언어로 더빙된다. 이로부터 저자는 ‘아시아성’에 대한 한 가지 비판적 결론을 내놓는다. 아시아적 가치란 무엇이며, 영화는 무엇을 통해 아시아성을 담아낼 수 있는가? 그것은 “정신적이고 문화적이며 고급한 가치” 속에 있지 않다. 그것은 오히려 근육질의 벌거벗은 몸, 거대한 기계 앞에 선 노동자의 몸, (제임스 본드의 최첨단 기구에 대비되는) 맨몸─ 즉 전 세계에 값싼 상품을 제공해야 하는 저임금 노동력을 구상화한 몸으로 표상되며 다시 그들을 하나로 묶는다.


어쩌면, 형용사로서의 ‘아시안’이라는 가상적 가치 혹은 미학으로 포장된, 이 상품으로서의 영화가 그럼으로써 비로소 ‘세계성’의 획득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 사례는 ‘자유 아시아’라는 자본주의 진영의 영화가 도달할 수 있었던 잔혹하게 상징적이고 물리적으로 의미심장한 최종 귀결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귀결을 실재적인 것 혹은 상징적인 것만으로 이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쟁투의 드라마에는 아시아 남성 하위 주체가 열망했던 욕망의 최대치가, 신체라는 실재적이고도 상징적인 한계 아래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책속에서

P. 46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대상들, 특히 액션영화에 한정지어 말하자면 이 텍스트들은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개별 일국영화사 안에서 거의 이야기된 바가 없다. (…중략…) 간단하게 말해서 이들 예외적 이름을 제외한 액션영화는 하위 계층 남성들의 값싼 오락물로서 존재했다.

종종 이 영화들은 노골적으로 국가의 시책을 전파하거나, 문화자본가들의 전략에 노출되어 있었다. 게다가 이 하위계급 남성의 영화는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를 젠더적으로 재생산하는 데 주력하였다. 그렇다면 이들 영화를 본다는 것은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이 영화들은 지배 이데올로기와 관련된 수많은 바이어스를 가지고 있으며, 아마도 여기에 대해 가장 취약한 문화 산물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런 이유로 이 영화들은 지배 이데올로기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한편 하위계급 남성들의 열망을 (미묘한 반발과 과잉을 통해) 최대치까지 드러낸다. 지금부터 우리는 이 열망의 한계치를 탐사할 것이다.


P. 392 종종 이런 영화를 접한 영화학자들은 ‘내셔널리티’를 거의 짐작할 수 없는 이 영화들의 상태 때문에 당황하게 된다. 나의 경험을 말하자면, <맹수>의 등장인물들은 영어로 말하고 있었고 <팔 없는 검객>의 주인공들은 유창한 독일어 사용자들이었다(그리고 영어 자막이 달려 있었다). <귀문의 왼발잡이>의 주인공들은 프랑스어에 능숙했다. 이와 같은 영화들을 이런 상태로 만나게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1970년대 중반 이후(구체적으로는 이소룡 영화의 서구에서의 붐 이후) 형성된 ‘아시안 마샬 아츠 필름’ 팬덤은 이 구해 볼 수 없는 영화를 상상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대면하게 한다. 한국과 같은 아시아의 개별 국가 안에서는 아카이브의 희귀한 장서가 된 영화들이, 유럽과 미국의 노천에서 그들의 언어가 입혀진 채로 흘러 넘쳐, 지금 다시 여기로 재귀해 있다.


P. 393 전 세계의 하위 계층 남성들에 의해 주도되는 이 플랫한 소비 속에서 영화는 드디어 내셔널 영화의 그 어떤 위계도 없이, 진정한 ‘공통성’의 형태를 얻었다. 이것은 매우 아이러니한 순간이다. 왜냐하면 전 세계 노동자들의 (무의식적인) ‘감각적’ 단결과 전 세계 자본의 순환이 함께 거기에 작용했기 때문이다. 오래된 영화의 명제, 산업이자 예술로서의 영화는 상품에 가장 가까운 형태를 얻은 순간, 비로소 세계성의 획득에 성공하였다. 이 ‘아시아’ 상품은, 다른 아시아의 상품들처럼 저임금 노동의 값싼 상품이라는 점에서 경쟁력을 지녔다. 그리고 이 소비에 내셔널리티를 염두에 두는 자는 거의 없다. 누가 당신의 셔츠가 메이드 인 베트남인지, 메이드 인 대만인지, 메이드 인 코리아인지 신경 쓰는가?


이영재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영화 월간지 <KINO> 기자로 일했으며 도쿄대 총합문화연구과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했고 현재는 성균관대, 서울대 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제국일본의 조선영화>(현실문화연구, 2008), <帝國日本の朝鮮映畵>(三元社, 2013), <トランスナショナルアクション映畵>(東京大學出版會, 2016), East Asian Cinemas1939-2018(Kyoto University Press and Trans Pacific Press, 2019, 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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