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전의 시와 근대 시사(詩史)를 수놓은 수많은 이념, 담론, 논쟁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중일전쟁 이후 소위 일제 후반기 문학장을 주도했던 담론들과 근대시 연구에서 종종 논쟁의 대상이 되는 '근대시, 자유시, 국민시'를 중심으로 1910년~1940년대의 시를 살폈다. 그리고 1920~1940년대 한국시사에서 주요한 논점을 형성하고 있는 시인, 주제, 경향을 분석한 글들을 실었다.
책을 내면서
제1부 ‘근대의 초극’이라는 담론
제1장 일제 말기 근대비판 담론의 시간성 연구
제2장 1930년대 비평장과 휴머니즘
제3장 전형기 비평의 논리와 국민문학론
제4장 일제 말기 신세대론 연구
제2부 근대시·자유시·국민시
제1장 1910~1920년대 자유시 논의에 나타난 장르적 무의식
제2장 일제 후반기 국민시의 성격과 형식
제3장 일제 후반기 시에 나타난 향토성 문제
제4장 고향의 발견
제5장 일제 후반기의 담론 지형과 문장
제3부 근대시의 문턱들
제1장 사건으로서의 3·1운동과 1920년대 시문학
제2장 만해 사상과 근대기획
제3장 윤동주 시의 세계 이해
제4장 동양적인 것의 슬픔, 또는 시적 초월의 이율배반
제5장 동양의 발견과 국민문학
제6장 1930년대 후반 시의 도시표상 연구
초출일람
한국 근대 시사를 수놓은 수많은 이념과 담론들
국문학자 고봉준의 두 번째 연구서가 발간되었다. 해방 이전의 시와 비평을 대상으로 ‘근대시의 이념들’이라는 제목을 붙여 묶었다.
‘근대’라는 개념이 그렇듯이, 한국문학사에서 ‘근대시’라는 개념이 갖는 문제성에 대해서는 그동안 많은 논의가 있었다. 우리에게 ‘근대시’는 특정한 시기/시대에 창작된 작품을 가리키는 동시에 근대 이전의 시가(詩歌) 전통과 구분되는 새로운, 그래서 20세기 내내 새롭게 정립되어야 하는 문제적인 개념이었다. 이는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거치면서 사실상 전통적인 시가 형식을 버렸다가 중일전쟁 이후에 되찾는 과정에서도 우회적으로 확인된다. 20세기 초반 아시아 국가들은 ‘근대시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통과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 과정에서 전통적인 시가 형식과의 충돌을 경험하기도 하고, 전통을 부정하고 유럽적 형식을 도입하려는 시도들이 있었다. 이 책의 제목에 등장하는 ‘이념들’이라는 복수형은 바로 한국의 근대 시사(詩史)를 수놓은 수많은 이념, 담론, 논쟁을 포괄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책은 전체 3부로 구성되었다. 1부 ‘근대의 초극이라는 담론’에서는 중일전쟁 이후 소위 일제 후반기 문학장을 주도했던 담론들을 주로 다루었다. 「일제 말기 근대비판 담론의 시간성 연구」에서는 세계사, 전통, 비상시의 세 개념으로 일제말 문학 담론장을 지배한 근대초극론의 시간성을 고찰했다. 「1930년대 비평장과 휴머니즘」에서는 1930년대 후반에 유행한 행동주의 휴머니즘과 김오성의 네오휴머니즘을 중심으로 당대 조선과 일본의 담론 지형이 어떻게 상호관련성을 띠고 있었는지를 살폈다. 1930년대 후반에 수입ㆍ소개된 행동주의 휴머니즘은 한국전쟁 이후 이헌구 등에 의해 다시 주목되기도 했으며, 해방 이후 순수문학의 중심이었던 김동리 또한 민족문학을 휴머니즘으로 규정했다는 점에서 해방 이전, 해방 이후, 그리고 전후로 이어지는 담론의 연결고리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전형기 비평의 논리와 국민문학론」에서는 일제말 최재서가 지성주의에 기초한 모더니즘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국민문학론으로 나아갔는가를 살폈고, 「일제 말기 신세대론 연구」에서는 일제 후반기에 새롭게 등장한 신인들의 시세계와 그들의 세대적 특징을 시단의 주조변화라는 관점에서 살폈다.
2부 ‘근대시ㆍ자유시ㆍ국민시’에서는 근대시 연구에서 종종 논쟁의 대상이 되는 세 개념을 중심으로 1910년~1940년대의 시를 살폈다. 「1910~1920년대 ‘자유시’ 논의에 나타난 장르적 무의식」은 제목 그대로 ‘자유시’ 개념이 안착하는 과정에 전통시가, 상징주의, 낭만주의 등이 끼친 영향을 주로 분석했다. 당대의 시인ㆍ비평가들은 ‘근대시=자유시’라는 등식에 기초하여 근대시 논의를 전개했지만, 이 과정에는 지속적으로 시가(詩歌) 전통, 즉 시를 노래로 인식하는 전통적 태도가 개입했다. 황석우, 현철, 주요한 등의 논의를 통해 전통과 근대가 길항하는 장면을 확인했고, 나아가 근대시 개념이 안착하는 과정이 단선적이지 않았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전통과 근대의 길항 문제는 「일제 후반기 국민시의 성격과 형식」과 「일제 후반기의 담론 지형과 『문장』」에서도 동일하게 확인된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서구 근대를 경험하는 방식의 하나는 유럽적 관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인데, 문학에서는 이른바 전통이라는 요소로 인해 항상 다층적인 수용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일제 후반기 조선에서 급증한 전통, 동양에 대한 관심 역시 이러한 문제와 무관하지 않았다. 전통과 현대, 서양과 동양의 문화적 길항 과정을 살핌으로써 근대에 대한 실증적 분석을 지속하는 것이야말로 근대시 연구의 가장 중요한 논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3부 ‘근대시의 문턱들’은 1920~40년대 한국시사에서 주요한 논점을 형성하고 있는 시인, 주제, 경향을 분석한 글들로 채워졌다. 한국 근대시는 역사적ㆍ정치적 사건들에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스스로를 역사적 시간 위에 노출시킨 채 흘러왔다. 근대시는 시대ㆍ사회와의 불화라는 근대문학의 특징을 공유하면서도 한국사회의 변화와 식민지 현실이라는 질곡의 상태를 내면화된 언어로 노래하는 이중의 책임을 감당해왔다. 근대시의 화자들은 대개 내면의 심리나 감정을 밀도 높은 언어로 고백하는 방식을 취해왔지만 우리의 불행한 역사적 현실은 그 고백마저 집단적ㆍ현실적인 것으로 변주해왔다. 이런 이유로 3부에 수록된 논문들은 그 각각이 근대시의 중요한 장면들, 특히 한국 근대시가 걸어온 길을 요약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다.
고봉준
부산외국어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고, 경희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한국 모더니즘 문학의 미적 근대성 연구」(2005)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이 당선되어 비평 활동을 시작했으며, 평론집으로 『반대자의 윤리』(2006), 『다른 목소리들』(2008), 『유령들』(2010), 『비인칭적인 것』(2014)이 있고, 연구서로 『모더니티의 이면』(2007)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고유한 아름들의 세계』(2015)가 있다. 현재 월간 『시인동네』 편집주간과 계간 『문학·선』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고석규비평문학상(2006), 젊은평론가상(2015), 시와시학평론상(2017)을 수상하였다. 2020년 현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